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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로뿐이라는 것

제법 쌀쌀해지고 손 시린 시기가 다가온 듯했다. 교실 창문을 열면 으스스하고건조한 공기 때문에 괜히 더 졸린 시기.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왔단 뜻이다. 어느 집안이나 그렇듯 개박살이 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우키와 히데에겐 평범한 집안과는 다른 이유겠지만. 

 

소우키는 성적이란 아무래도 좋았고, 히데는 유독 조용해지는 시기였다. 원래도 조용한 놈이 쥐 죽은 듯이 구는 게 뭔 대수겠냐먄, 소우키에게는 당장 가출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 쌓이는 요소 중 하나였다. 몇 분 차이로 먼저 태어나 형이란 타이틀을 독차지하는 저 자식이 왜 공부에 신경을 쓰는지. 그렇다면 공부에만 집중하든가. 굳이 저와 함께 무대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드는 상황 자체가 아니꼬운 것이었다. 무대에서 집중할 때의 모습을 보는 것도 뭣 같은데, 집에서까지 그 위화감을 맞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히데 저 자식은 소우키에게 아무 소리도 못 해야 되는 건데유독 시험기간일 때만큼은 소우키가 집어삼킬 것만 같은 집중력에 압도당하는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소우키는 공부라면 관심 없다. 적당히 못해도 노래만 잘 부르면 되니까. 좆같이 참을 수 없는 건 형이랍시고 뻗대는 혈육을 견딜 수 없는 것 뿐이었다.

 

보컬 연습 후 돌아간 집에는 사람 사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원래라면 왔냐며 말 더듬고 애써 말이라도 걸어 보려 들었을 텐데. 무시한다는 건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기분 잡치게 만드는 재주에 혀를 차는 소우키였다.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니 저 보라는 건지굳이 식탁에 앉아 책을 펼치고 있는 히데가 보였다. 미친놈이라 부르려 하던 때 또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그 눈빛 때문에. 공연 녹화본을 볼 때만 보이는 히데의 그 광적인 집착이 보였다. 

 

위축되는 기분을 모른다. 그렇지만 열등감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런 소우키는 저보다 잘되려고, 다른 길을 걸으려 하는 히데 때문에 괜히 더 성질이 긁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밴드에 열중하지 않을 거면 퇴부하든지. 지한테 소중한 공부에만 전념하면 덧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괜스레 얄밉고 방해하고만 싶었다. 그래서 쿵! 책가방을 히데의 앞에 놓아 버렸다. 

역시. 히데는 소우키 없으면 안 되는 거 다 아는데. 어디서 뻗대려 드는 건지.  그제야 까무러치게 놀라며 올려다 보는 히데. 제가 온지도 정말 모른 듯했다. 그 모습이 한심해 비웃고 가려고 하는 소우키의 팔을 붙잡고 히데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술만 달싹였다.

 

뭔데. 빨리 말해.

“…. 곧 나가지. 친구 만나러 간다는 소리 들었어.”

 

아까 급식실에서 한 얘기를 들은 건가? 그보다 어떻게 들은 거지? 의문들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둘은 다른 반임에 더불어같이 앉을 리가 없는데. 저 찐따가 저를 감시한 것으로밖에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 소우키는 소름이 돋았다. 저게 스토커 아니면 뭔데.

 

내가 친구 만나는 것까지 오지랖 부리게? 미친놈. 역겨워서 너랑 같은 공간에 있기도 싫다. 그러니까 내가 항상 친구 만나는 것일 거란 생각은 못 하나 봐? 소름 끼쳐.

 

소우키는 눈이 헤까닥 뒤집힐 것만 같았다. 집에 들어왔을 땐 아는 체도 안 하더니, 왜 지랄이지? 내가 뭘 하든 남이사나갈 때 훈수 두는 척하려는 가식에 헛구역질이 나 버릴 것만 같아 곧바로 되갚아 주었다. 

 

신경 꺼. 기분 드럽게 오지랖 부리지 말고. 공부 좀 한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본데, 네가 나한테 말 걸 수준은 아니거든.

 

그러곤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 소우키에 히데는 열린 문을 한숨 쉬고 닫을 뿐이었다. 

소우키는 …. 다 저를 위해 하는 소리인지도 모르고 자꾸 어리광 부리는 게 형으로서 불편했다. 

 

 

 

 

 

 

 

 

 

시간 지나 중간고사 첫째 날

 

 

밴드부 동아리실에서 기타 조율하고 있는 히데가 있었다. 모두가 시험 끝났다며 놀러다니거나 내일 있을 시험들을 대비해 집에 가 있을 시간에히데는 몰래 소우키의 책상에 쪽지를 두고 나와 만나자고 요청한 것이었다. 히데에겐 친구도 없고, 소우키를 챙기는 일 제외하곤 일정도 없었으니 지금이야말로 다시 사이를 풀어내고 싶은 것이었다. 시험이 끝났으니 소우키도 가장 들떠 있을 때기에 공략하기에도 좋고.

 

소우키가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할 인물이 아니라는 건 히데가 제일 잘 아는 사실. 그러니 형인 히데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줘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 지치냐고 묻는다면, 글쎄. 무대 위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저의 동생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런 삶 정도라면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히데는 생각한다. 절대 말할 수 없는 진심이겠지만. 

 

그렇게 화해하고 나서 뭘 할지, 어디로 데려가 밥을 먹일지 상상하며 연주하다 보면 소우키가 곧 올 시간이 된다. 분명 처음엔 안 오겠다고 고집 부리고, 해가 지고 나서야 올 것은 알고 있다. 소우키니까. 그런 소우키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지켜 주려는 상대가 본인뿐이라는 사실에 히데는 기타로 소우키의 애창곡만을 연주하고 또 연주한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소우키의 발소리가 복도에 들리기 시작했다. 가까워질수록 히데는 숨이 가빠지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마주할 생각에

 

꼴값 떨고 앉아있네. 네가 이런다고 누가 그 별볼일 없는 실력 들어줄 것 같기나 해?

 

역시나 비아냥거리며 등장하는 저의 동생에 히데는 살풋 웃음이 지어졌다. 단순하고, 그만큼 순수한 제 동생이라서.

 

“…. 응. 그렇지. 소우키 너만을 위한 연주니까…. 혹시, 한 번만 불러 주면 안 될까…? 네가 불러 줘야만 내일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눈을 마주치고. 그렇게 고민하는 듯한 소우키의 표정을 보면 이미 답이 나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엔 자기에게 무른 소우키라는 걸 히데 또한 알고 있으니까.

 

 혀를 차며 가방을 내려놓는 소우키. 

 

한 번만 부르고 집 갈 거야. 너 때문도 아니고, 그냥 내가 부르고 싶어서. 그러니까 제대로 연주 못할 거면 꺼져.

 

그런 소우키를 보며 웃으며 마이크를 건네 주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히데였다. 목 가다듬는 동생을 보는 히데는 전율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다기타를 칠 때와 마찬가지로. 둘 다 좋아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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